"강현아, 우리 도헌이는 왜 아직 나오지 않는거니?"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저 그게..."
신강현이는 도헌이와 축구 수업도 함께하며 친하게 지내는 같은 반 아이였다.
강현이가 약간 당황해 하며 말을 피하여 한다.
"혹시 도헌이 자원봉사 하고 있는 거 아니니?"
"‥‥‥네, 맞아요. 도헌이 자원봉사에 걸렸어요."
"어쩌다가 그랬는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대답을 회피하려고만 하며 자리를 떠나고 싶어했다.
"응, 알았다. 강현아, 가르쳐 줘서 고맙다."
강현이를 보내놓고, 곰곰히 생각하여 봤다.
전 번에는 일기장을 미리 제출하지 않아서 '봉사활동'을 하였다고 하였지만,
그때의 일도 일기장을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도 깜빡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숙제도 다 하고 갔었는데...
오늘은 학교에서 '무지개활동'을 하는 날로
'학교유니폼'을 입고 한강변을 '거북이걸음'행사로 걷는다고
'알림장'에 적혀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침에 등교할 때에는 기분이 한층 고조되어 있었던 도헌이었다.
5교시를 하는 날이라 13:30분에 도헌이를 데릴러 가려고 생각 중인데,
"여보, 오늘은 도헌이 무지개활동하느라고 일찍 마칠 것 아니예요?"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한 시간 앞 당겨 학교에 도착하여 보안관에게 물었다.
"오늘 5교시 합니까?"
"네, 오늘 5교시입니다. 그런데 일찍 오셨군요."
"아 그게 오늘 한강변 걷는 행사를 한다고 하여 혹시나 일찍 마칠 것 같아서요."
마침 운동장의 한 쪽 구석에 자리 잡은 놀이터에서 도헌이가 같은 반의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이왕 온 김에 아이들 노는 걸 구경 좀 하여 볼까)
놀이터 의자에 앉아서 구경하며 읽을 거리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떼 지어 한 무리 아이들이 몰려 오더니 그 중에서 한 아이가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도헌이 할아버지시죠?"
"응, 너희들이었구나. 도헌이와 잘 지내고 있지?"
"네, 저와 도헌이는 친한 친구예요."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고개를 꾸뻑 숙이며 인사를 한다.
"오, 그래, 모두 인사성이 밝구나. 어서 가서 즐겁게 놀아주렴."
도헌이도 저 쪽에서 할아버지를 알아 보고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낸다.
한 참을 거기서 보내다가 보안관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잠시 후에 벨이 울렸다.
아이들이 제마다 교실로 향하였다.
몇몇 아이들은 그때까지도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보안관이 놀이터로 향하여 걸어가서 호르라기를 불며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몰아냈다.
"어서 들어가거라! 수업시간 시작 되었다."
아마도 도헌이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던 같았다.
13:40분이 되었을 때, 도헌이반 선생님이 아이들을 인솔하여 나온다.
선생님이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여 보인다.
비록 먼 발치에서나마 나도 고개를 숙여 정중히 답례를 한다.
다 들 나오는데 도헌이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도 들어가 버리고...
그래서 강현에게 알아 본 것이었다.
14:00시가 되어서야 도헌이가 몇몇 아이들과 함께 현관을 나온다.
먼저 주위를 둘레둘레 둘러 보며 할아버지를 찾아 보고 미소를 보이며 손을 흔든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손을 흔들어 주지 않는다.
(아~ 할아버지가 화가 났구나.) 도헌이 그렇게 생각했으렸다.
가까히 다가오는 도헌이를 냉혹한 눈길로 맞이하고 물어 본다.
"도헌아, 오늘은 왜 자원봉사를 하였지?"
"아, 그게 할아버지 그냥 가. 얼른."
말하기가 쑥스럽다는 듯이 도헌이 어서 빨리 학교를 떠나고 싶은 모양이다.
"왜 그랬는데? 이번엔 숙제도 모두 하였지 않았니?"
자전거를 출발하며 물었더니, 도헌이가 귀찮다는 듯이 어쭙쟎게 대답을 한다.
"아까 놀이터에서 벨소리를 듣지 못하고 늦게 교실에 들어갔었어."
"도헌아, 앞으로는 학교 규칙을 잘 지켜라. 다음에도 자원봉사에 걸리면
할아버지는 기다리지 않고 그냥 가 버릴가 보다."
"싫어, 할아버지는 나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해."
할아버지의 등 뒤에 선 자세로 타고 가는 도헌이가 무릎으로 할아버지의 등을 찧는다.
"그러면 도헌이도 약속하여라. 다음부터는 학교 규칙을 위반하지 않겠다고."
"그래, 앗씨. 얼릉 가! 빨리 달려!"
"약속했다. 약속은 꼭 지켜야 되는 것이다."
자전거를 주차장에 갖다 두고 집에 들어 서니,
"우왕, 도대체 나는 왜 그러는데, 준비물도 제대로 주지 않고 엉 엉 엉"
도헌이의 격앙된 쇠소리에 이어 할머니의 응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무슨 준비물을 준비해주지 않았다고 그러니?"
"오늘 아침에는 모자를 갖고가야 되는데, 준비 해주지 않았지 않아.
그리고 전 번에 사과 가지고 오라고 했을 때도 가지고 가지 않아서 친구걸 가지고 재료 만들었고,
25일에 공개수업 할 때에 다른 애들은 엄마가 와서 지켜 봤는데 나만 안 왔었다고."
"도헌아, 할머니가 미처 알림장을 읽어 보지 않아서 실수하고 말았구나."
"다른 애들은 엄마가 모든 걸 챙겨 주고 그런데, 엉엉엉, 아 슬프다."
할아버지가 한 마디 거들었다.
"도헌아, 너 엊저녁에 할아버지가 모자 가지고 가야 된다고 말했쟎아.
그런데 뭐라고 했지? 괜찮다고 했잖아. 닌텐도 하느라고 그걸 잊어 버리기라도 했니?"
"내가 언제 그랬어? 할아버지가 준비해주지 않았으면서..."
"도헌아, 그렇다면 앞으로 숙제와 과제물을 준비해서 책상 위에
올려 놓을 테니 아침마다 도헌이가 직접 확인하면서 챙겨 가거라. 그러면 됬지?"
"할머니가 챙겨 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거야."
"그래, 할머니가 챙겨 줄께, 이제 화 풀고 할머니한테 와 보렴."
"싫어, 나 화 안풀거야."
"도헌이 하고 싶은대로 해줄테니까 어서 할머니한테 오렴."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도헌이가 은근슬쩍 할머니의 품에 안긴다.
"뭐 해줄껀데?"
"도헌이 뭐 먹고 싶은데?"
"떡볶기, 그리고 두가지는 다음에..."
할아버지는 서재로 돌아와서 읽던 책에 몰두하였다.
잠시 후 도헌이 떡볶이를 사 들고 와서 한 참 맛있게 먹고 나서
할아버지 무릎에 와 앉으며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나한테 계속 자전거 태워준다고 약속해!"
"오냐, 알았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손자야. 아까는 할아버지가 화가 나서 그렇게 말한거야.
사람은 누구나 화가 나면 아무렇게나 말해버리고 말거던.
할아버지는 언제나 도헌이와 함께 다니는 걸 좋아하니까 걱정 말아라!"
도헌이의 심중이 이렇게도 복잡스럽게 엉켜 있었다니‥‥‥.
벌써 이렇게 어른스러졌었나?
이제는 도헌이도 완전한 인격체로 형성되어 있었다.
생각난대로 아무렇게나 말을 해서는 안되겠다.
아까 할아버지의 대응 방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냥 넘어가고 다음에 적당한 기회를 찾아 주의를 줬어야 할 터였다.
아니 어쩌면 이런 일이 있어서 도헌이 심중을 알게 되어
오히려 이해의 장이 되었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도헌아, 할머니가 챙겨 주는 것을 아침에 가방에 넣는 일은 도헌이가 직접 하는 거다.
아니, 아침에는 밥 먹는 시간도 바쁘니까 잠자기 전에 챙겨 넣도록 하여라."
"알았어, 언제나 밖에다 챙겨놔, 그러면 내가 가방에 넣어 갈께."
"자, 약속이다."
"꼭 챙겨줘야 해. 약속!"
손가락을 걸며 약속하였다.
사랑하는 道憲아! 정말로 미안하구나! 이제사 도헌이를 진짜로 알게 된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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