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으로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를 타게 되었다.
부모님 제사를 모시러 가기 위해서였다.
나의 상식으로는 '조성'에 갈려면 반드시 순천을 거쳐서 가는 것이었는데,
조성에 살고 있는 장조카에게 문의 하였더니
전라선이 아닌 호남선으로 오게 되면 환승 없이 조성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상식이란 고정관념이 얼마나 실속 없는 것인 줄 다시한번 깨닫게 된 동기였다.
인터넷으로 멤버십회원번호를 입력하여 승차권을 예매하고 핸드폰에 발급받아 시간에 맞추어 용산역에 도착하였다.
암사역에서 07시15분에 출발하여 천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왕십리역에서 중앙선으로 환승하였다.
용산역에 도착하니 08시 10분이었다.
안내양에게 핸드폰의 예매 상황을 보여주며 승차권 발매 받는 방법을 물었더니
"그냥 타시면 됩니다. 검표시에는 핸드폰의 내용을 보여주시면 됩니다."라고 대답한다.
"오! 그래요. 쌩큐."
시장기가 들었다. 아침 식사를 하려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구내식당은 어디에도 없었다.
빵과 옥수수차로 조반을 대신하였다.
09시 15분 열차의 탑승을 알리는 안내판이 점등됨에 따라 플레트홈에 들어섰다.
그 때 차장이 차에 오르며 빨리 타라고 한다.
무턱대고 타서 2호차 19석을 찾아갔더니 다른 승객이 이미 앉아 있었다.
차장에게 가서 핸드폰에 입력된 현황을 보여주며 자리를 찾아달라고 하였더니,
"아저씨, 이 차가 아닙니다. 이 차는 '엑스포열차'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무궁화열차치고는 어쩐지 차 안이 여유가 있고 호화(?)스럽드라니‥‥‥.
난감해졌다. 타기 전에 시간을 확인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되지요? 이 열차를 타고 가려면 돈을 더 내고 가면 되겠네요."
"안 됩니다. 이 열차는 아마도 빈 좌석이 없을 겁니다. 이열차를 타고 가시다가
'영등포역'에서 내려가지고 기다렸다가 뒤에 도착하는 무궁화호를 타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영등포역에서 내려서니 용산역에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엑스포열차에 탑승하는 것이었다.
여수 엑스포관광열차가 새삼 실감나게 느껴졌다.
무궁화호에 승차하여 좌석표를 찾아갔더니 옆좌석엔 이미 손님이 앉아 있었다.
50대의 점잖은 신사분이었다.
"반갑습니다."하며 창측의 내 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반갑습니다. 어데까지 가십니까?"
"조성까지 갑니다. 댁은 어디까지?"
"네, 저는 천안까지 갑니다."
"날씨가 참 좋지요?"
"아직은 꽃샘추위라서 그런지 저는 봄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담소하며 모처럼 즐거운 여행을 하는가 하였었는데 그는 천안역에서 내리고 말았다.
'드림'소설책을 펼쳐들고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휙'파람을 일으키듯이 옆좌석에 철퍽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순간 아찔할 정도로 강한 로얄향기가 나의 코 감각을 마비라도 시킬 것처럼 덤벼왔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 옆자리를 돌아보니 묘령의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어~ 반갑네요!" 알은체를 하였더니, 아가씨가
"안녕하세요." 그 말 한마디를 던지듯하고 나서 서둘러 스마트폰을 톡톡거리며 동그란 손거울을 꺼내든다.
나는 읽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조성까지 걸리는 시간이 무려 6시간이나 되었기에 준비한 책이었다.
'톡톡톡...'거리다가 거울 한 번 보고 입을 삐죽 거리듯 하기도 하고‥‥‥.
반복되는 아가씨의 행위가 림듬에 맞추기하도 하듯이 일정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마침내 책의 재미있는 내용에 푹 빠져 들어가고 있었는데도
여전히 옆좌석의 아가씨에게서 풍기는 진한 로얄향기에 감미로운 느낌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가끔 곁눈질로 의식이 가는데 아가씨는 역시나 스마트폰과 거울을 교대로 하며 얼굴을 매만지고 있었다.
거기에다 언뜻 비쳐보이는 그녀의 거울에 나의 얼굴이 들여다보는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호호호호호. 아저씨, 미안해요. 집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여기에 와서 얼굴 화장을 한 거예요."
"그러면 스마트폰을 멈추고 화장부터 하면 되지 않을까?"
"그게요, 여기 들어오는 메세시에 일일이 답을 해줘야 되거든요." 이른바 채팅이라도 하는건가.
"아항, 그렇구나. 그러니까 많은 젊은이들이 지하철이나 어디서든지 앉았다 하면 스마트폰을 건드리는구나."
"맞아요. 아저씨도 여기에 빠져보시면 아마도 저희들보다 훨씬 재밌어 하실 터인데요."
"그건 나의 취미가 아니야. 나는 그저 책이나 읽는게 훨씬 나아."
익산에서 그 아가씨가 내리는 것이었다.
"아저씨, 잘가세요." 인사하는 아가씨를 정면에서 보니 꽤나 미인이었다.
"그래요, 그러고 보니 무척 아름답구먼, 덕분에 즐거웠어요."
조금은 아쉬웠다. 주책스럽게도 그런 생각이 들다니‥‥‥.
읽던 책을 덮고 차창 밖을 바라봤다.
시골 풍경의 정취가 물씬 차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듯하였다.
다음 승객은 누구일까? 궁금하여졌다.
그러나 조성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나의 옆자리를 채워주지 않았다.
덕분에 두 자리를 독차지하여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었지만 조금 허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신발을 벗고 좌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젖어보기도 하였다.
서광주를 지나 송정리를 지나고 화순역을 지나 보성역을 지나는 동안
차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내내 고개드는 상념속엔
아~ 내고향은 언제나 그대로의 모습이구나.
대전부터 수도권에 가까울수록 고층건물들이 빽빽히 들어차고 있는데도
여기 호남땅엔 저리도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가!
거리엔 활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성역에 도착하여 보니 부산에서 조성에 와 있던 친구가 마중나와 있었다.
오랫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라 우린 옛날 그대로 말을 트며 주위의 맛집을 찾아 나서는데
이게 왠 일인가! 시장통에 음식점이 모조리 문을 닫아 걸고 영업을 하지 않은게 아닌가.
"이것이 시골의 현실이라네." 친구의 말에 참담함을 느끼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친구와 막걸리라도 나누며 오랫만에 회포라도 풀어보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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