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음은 배달되지만,
어르신은 훈련되어야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읽은 한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늙는 것은 자동이지만, 어르신이
되는 것은 훈련이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마치 얼어붙은 뒤통수를
세게 내려치는 듯했다.
그동안 나는 나이만 먹으면
성숙이라는 열매도 저절로
열린다고 믿었다.
마흔이 되면 저절로 판단력이
생기고, 쉰을 바라보면 강물처럼
깊은 인내심이 흘러 넘 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거울 속 주름진 얼굴은 성숙의 증거가 아니다.
주름은 단지 시간이 남긴 물리적
흔적일 뿐, 그 세월 속에 무엇을 담아왔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 일은 생물학적
현상이지만, 어르신이 되는 일은
철저히 의지의 영역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말을
멈추는 법, 자신의 명백한 실수를 군더더기 없이 인정하는 법,
타인의 고통 앞에서 내 아픔을 잠시 내려놓는 법. 세월은 이런 것들을 자동으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시간은 우리를 늙게 만들 뿐,
반드시 성숙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늙음은 누구에게나 배달되지만, 어르신다움은 스스로 찾아가
익혀야 하는 훈련의 결과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일흔의 나이에도 아이처럼
떼를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물다섯의 청년이 묵직하게
자기 삶을 책임지는 모습도 있다.
결국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성숙은 선택이다.
우리가 매 순간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어르신의 길과
노인의 길이 갈라진다.
우리 사회에는 나이 하나만으로
모든 존중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내가 몇 살인데!”
이 말은 때로 권위를 주장하는
호통처럼 들리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내세울
어른다움이 없다는 자백일
수도 있다.
진짜 어르신은 나이를 앞세워
상대를 누르지 않는다.
권위 대신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실수했을 때 구차한 변명보다
담백한 사과를 먼저 건네는 사람,
약한 사람 앞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감정 찌꺼기를 남에게 함부로 쏟아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우리는 비로소 ‘어르신의 향기’를 느낀다.
나 역시 오래도록 살아왔지만
여전히 미숙함투성이다.
솟구치는 화를 가라앉히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여전히 두렵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여전히 답답하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마음이
저절로 너그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나이가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이는 배달되지만,
성숙은 연습하러 나가는 쪽에 선 사람에게만 조금씩 몸을 내어준다.
성숙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매일 조금씩 자신을 깎고 다듬는
훈련 없이는 우리는 그저 나이 든
아이로 남을 뿐이다.
늙음은 누구에게나 배달되지만, 어르신 됨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늙음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어르신이
되는 일은 선택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노화라는 비극
속에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자,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자부심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태도가 내일의 나이를
어떻게 만들지, 그 선택권만은
아직 우리 손안에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침의 작은 인내, 저녁의 사소한 양보 같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연습들에서
서서히 모습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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