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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야화
홍어
사랑방 처마끝에 매달린 잘 삭은 홍어가 봄바람에 까닥까닥 마르자 천석꾼 부자 최진사는 술 한잔 마실 때마다 홍어를 조금씩 찢어서 초장에 찍어 먹었다.
찬모 언년이는 술상이나 밥상을 들고 사랑방을 들락거릴 때마다 홍어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어느 날 온 집안 식구들이 집을 비운 사이 언년이는 방석만한 홍어를 표나지 않게 조금 찢어서 자기 방으로 가져가 초장에 찍어 먹고는 그 묘한 감칠맛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최진사가 홍어를 뜯어먹고 나면 언년이가 뜯어낸 자리에서 다시 조금 더 뜯어먹기를 서너차례. 최진사는 금쪽같은 홍어를 누군가 훔쳐 먹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느 날 최진사가 의관을 차려입고 강 건너 상가에 문상하러 집을 나서자 홍어향이 봄바람을 타고 부엌으로 들어와 언년이의 코끝을 간질였다.
언년이가 뜯어 온 홍어를 자기 방에서 초장에 찍어 막 입에 넣으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최진사가 독사 눈으로 언년이를 째려봤다.
그날 저녁, 머슴·행랑아범 등 남정네들이 보는 앞에서 언년이는 안마당 한복판에 엉덩이를 까고 엎드려 최진사의 싸리 회초리 매타작을 받았다. 엉덩이에서 피가 질질 흘렀다. 그로부터 보름 후 언년이는 찬모 품삯을 받아 최진사 댁을 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닷새 후 새 찬모가 들어왔다. 그날 밤 새 찬모는 언년이가 쓰던 방에서 이불을 펴다가 최진사에게 올리는 밀봉한 편지 한통을 발견, 안방마님을 거쳐 최진사에게 전했다.
무슨 편지인가 싶어 조심스레 겉봉을 뜯어보니 언년이가 최진사에게 쓴 편지였다.
그런데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최진사가 갑자기 새파랗게 질리더니 ‘우웩우웩’ 요강까지 갈 사이도 없이 저녁 먹은 걸 방바닥에 다 토했다. 편지 내용은 이랬다.
‘최진사 어른께. 진사 어른 마시는 머루주 때깔이 더 새빨개졌지요. 내 월경포를 담가놓았으니! 홍어는 맛이 더 좋아졌지요. 오며 가며 내 가래침을 발라놓았으니! 언년이 올림.’
최진사는 드러누웠다. 밥 한숟갈 먹어도 토하고 물 한모금 마셔도 토했다. 용하다는 의원 모두 불러봐도 백약이 무효. 피골이 상접한 최진사는 결국 한달을 못 넘기고 이승을 하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