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 준비 과정

정주영

開闢 2013. 12. 2. 11:00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렸을때부터 자주 가출하였다.

"내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이것은 실패가 아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나한테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낙관하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학교와 다리, 도로를 짓는 일이 계속 됐지만 시멘트가 없어 현장에선 일손을 놓아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시멘트가 없다면 시멘트 공장을 만들면 된다.

어려운 일에 부닥치면 문제를 단순하게 정리해 해결하는 그는 시멘트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불감폭호 불감풍하(不敢暴虎 不敢馮河:맨손으로는 호랑이를 잡지 못하고, 걸어서는 황하를 건널 수 없다)'

"나는 고령교 공사에서 생긴 막대한 적자의 뼈아픈 원인 가운데 하나가 장비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비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았다." 원효로에 중장비 공장을 설립하였다.

정주영은 현장을 누비는 건 일상이었다. 현장에 가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일의 진척사항을 확인하곤 하였다. 

"현장에서 내 단련을 받으며 일을 배운 사람은 어떤 자리에 갖다놓아도 안심할 수 있다.누구보다 철저하고 완벽하게 수행해낼 능력과 책임감 있는 '진짜 일꾼'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오일쇼크에 자금난이 밀어닥쳤다. '위기의 진원지에서 기회를 찾자.' 그는 중동 진출의 뜻을 밝혔다. "돈을 잡으려면 돈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 베트남 특수도 끝났다. 지속적인 성장을 하려면 또 다른 해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주베일에서 중동신화를 일구어내기도 하였다.

정주영의 사전엔 '안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가 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서 가장 많은 구간을 시공하였다.

포드의 하청을 받아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였다.

영국에서 차관을 얻어와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함께 진행되기도 하였다. 

"북한과 제3국 건설시장에 진출하는 일 선박해체 사업, 자동차 오디오 생산, 통신사업, 서해안공단 조성 산업‥‥‥" 

 

1915년 : 출생

1931년 : 가출시작

1934년 : 쌀가게 복흥상회 취직

1938년 : 경일상회 창립

1940년 : 아도서비스 창업

1945년 : 훌동광업소 사직

1946년 : 현대자동차공업사 창업

1947년 : 현대토건사 창업

1950년 : 현대건설 사장 취임

1953년 : 고령교 공사 착공

1957년 : 한강인도교 공사 착공

1962년 : 단양시멘트공장 착공

1967년 : 현대자동차 설립

1968년 : 경부고속도로 공사 착공 및 포드와 손잡고 '코티나' 생산

1974년 : 현대조선 설립

1976년 : 포니 생산 및 주베일항만 공사 수주

1981년 : 올림픽 유치위원장 피선

1984년 : 현대전자 설립

1987년 : 현대그룹 명예회장 취임

1989년 : 소련 방문

1992년 : 14대 국회의원 당선 및 대통령 선거 출마

1993년 : 국회의원직 사퇴

1998년 : 소떼몰이 방북

2001년 :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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