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마사에게 주는 즈이후의 忠言
첩자로 오인받고 포승줄에 묶여온 즈이후에게 우지마사가 묻는다.
"그대인가, 우리 부자를 만나겠다고 한 자가? 직접 대답해도 좋다. 우선 이름부터 말하라."
상대는 부드러운 자세로 꼿꼿이 서서 말했다.
"이름은 즈이후, 때때로 방랑벽이 있는 승려입니다."
"으음. 은밀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예. 굳이 사람을 물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누구든 동석해도 상관없습니다."
"어떤가, 해칠 마음이 없는 것 같으니 포승을 풀어줄까?"
"그럴 것까지는 없습니다. 팔은 묶여 있지만 혀는 자유롭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가지시게 하는 것은 소승의 본의가 아닙니다."
"괴이한 자로군…… 좋아. 그럼 즈이후, 무슨 말이 하고 싶은가? 꺼릴 것 없이 그대로 말해보라."
"예, 말씀 드리지요. 두 분께서는 이처럼 허술한 방비로 칸파쿠와 싸우실 생각인지 우선 그것부터 여쭙고 싶습니다……"
"뭣이, 이처럼 허술한 방비라고?"
즈이후라는 괴한의 첫마디에 우시마사는 버럭 화를 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심으로 자만하며 일부러 방비태세를 보여준 뒤 첩자를 놓아줄 정도인 오다와라의 굳건한 방비를 상대는 가볍게 일소에 부쳤다.
"즈이후라고 했지?"
"예. 바람 부는 대로 정처 없이 방랑하고 있으므로 이름도 그렇게 지었습니다."
"그대는 아무래도 하시바의 첩자일 것이야. 그렇지?"
"아니, 굳이 첩자……라고 하신다면 천하의 첩자이지 히데요시나 이에야스의 첩자는 아닙니다."
"으음, 꽤나 호언장담하는 자로군. 그런데 불도는 어디서 닦았는가, 어떤 종파에 속하는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에이잔입니다마는, 지관도 제 발을 묶어놓지 못했고, 굳이 말씀 드린다면 여덟 개 종파를 두루 섭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즈이후는 그때까지는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갑자기 말을 끊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성주님은 아직 제 물음에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대의 물음?"
"예, 이처럼 허술한 방비로 칸파쿠와 싸우실 생각이냐…… 이것이 저의 첫번째 물음이었습니다."
"싸울 생각이다."
여느 때 같으면 이렇게 터놓고 말할 우지마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괴한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이 사나이에게서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그대가 여덟 개 종파를 섭렵했다면, 나는 <六韜三略>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무장이다. 여보게, 나는 말일세, 이기지 못할 전쟁은 하지 않아."
"참으로 잘 생각하셨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지요. 전쟁을 하신다면 불안합니다."
"즈이후! 그대는 내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아. 나는 이기지 못할 전쟁은 하지 않는다고 했지 싸우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시면…… 이긴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그대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냐?"
"예. 싸우면 반드시 패한다…… 이렇게 보았기 때문에 공사장에서 그 말을 했다가 그만 여기까지 끌려왔습니다."
"그거 재미있군! 싸우면 반드시 패한다니…… 어디 그 이유를 말해보도록 하라."
"말씀드리지요. 영내 총동원령과 식량 비축이 벌써 오사카까지 알려졌습니다."
"그럴테지. 그러나 그 사실이 알려졌다고 해서 우리에게 불리할 것은 하나도 없어."
"히데요시라는 사람은 인해전술에 아주 뛰어난 명인입니다."
"인해전술…… ?"
"그렇습니다. 아마 히데요시가 공격해올 때의 그 어마어마한 군사와, 바다와 육지를 통해 수송하는 보급품을 보시면 성주님은 사기를 잃게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온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 그에 대해 우리의 정예부대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안 됩니다. 인간의 차원도 방비의 차원도 다릅니다. 세상에 차원이 다른 것처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차원이 다르다니 무슨 뜻이냐, 즈이후? 하시바와 내가 어떻게 다르다는 말이냐?"
"성주님…… 세상에는 현격한 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현격한 차이 정도로는 경우에 따라 져야 할 자가 이기고, 이겨야 할 자가 지기도 하는 뜻밖의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으음, 점점 더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군."
"그런데 차원이 다르다면 어떻게도 할 수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이기는 쪽이 이기고 지는 쪽이 지게 됩니다. 한쪽에는 역사의 뜻이라 해도 좋고 신불의 가호라 해도 좋으며,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뜻밖에 운이 따랐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는 반대로 가난 귀신과 불운의 별이 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겨도 지고 공격해도 죽임을 당합니다. 모든 일이 불리하게 전개됩니다. 멀리는 헤이케의 멸망에서 가까이는 타케다, 아케치 시바타 등이 직접 남긴 교훈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즈이후!"
"노하셨습니까? 그러나 잠시 참으십시오…… 이 즈이후는 아부를 하지 않는 대신 절대로 거짓말도 하지 않습니다. 모처럼 이렇게 군비를 강화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군비를 배경으로 삼아 화의를 맺으십시오. 그러면 호죠 가문은 일본에 없어서는 안 될 큰 다이묘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행운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때 우지나오가 아버지의 분노를 알아차리고 얼른 즈이후의 말을 받았다.
"아버님! 이자는 보통 녀석이 아닙니다. 제가 심문할 것이니 잠시 그냥 계십시오."
"으음, 네가 말이지……"
"즈이후라고 했느냐?"
"예. 부탁도 받지 않은 말을 떠벌리고 다니는 중입니다."
"네가 한 말을 우리 가문에 대한 충고로 알고 다시 묻겠다."
"예. 무슨 일이든 제가 알고 있는 한 대답하겠습니다."
"너는 이 성에 올 때까지 어디 있었느냐?"
"죄송합니다. 슨푸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천하의 대세를 살펴보고 왔습니다."
"너는 이에야스 공을 알고 있겠지?"
"직접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묻겠다. 우리와 칸파쿠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 이에야스 공은 어느 편이 될 것이라 생각하느냐?"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즈이후는 잠시 주위를 돌아보았다.
"사람을 물리칠 필요는 없겠군요. 모두 측근일 테니……"
"상관없으니 어서 말하라."
"예. 이에야스 공은 작은 성주님으 장인 아니십니까?"
"그게 어쨌다는 말이냐?"
"분명 사이고 마님에게서 태어나신 스케히메, 텐쇼 3년에 출생하셨다고 들었으니 올해로 열다섯 살…… 이에야스 공에게도 아주 사랑스런 따님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편을 들게 될 것이란 말이지?"
"아닙니다. 편을 들 수 없는 전쟁이기에 어떻게든 만류하려고 고심하고 계신다는 것을 슨푸에 있으면서 크게 느꼈습니다."
"나그네 승려, 그대는 혹시 도쿠가와 님의 부탁을 받고 여기 온 것은 아닌가?"
즈이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대는 우리 가문과 칸파쿠와의 사정을 알고 있느냐?"
"표면적인 이유는 조슈의 사나다 마사유키와의 불화. 히데요시가 사나다 마사유키에게 준 나구루미 성을 호죠가문에서 빼앗았느니 어쨌느니 하는 것.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요는 호죠 가문이 히데요시의 요구를 받아들여 상경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찮은 고집."
"어째서 그대는 하찮은 고집이라 말하느냐? 우리 가문이 이 땅에서 칸토를 제압해온 지 이미 오 대…… 그러한 우리가 이유도 없이 히데요시에게 굴복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히데요시에게 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데요시 역시 천황의 가신으로, 일본을 통일하려는 천황의 명을 받은 것일 뿐이라 해석하면 진노가 풀리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호죠 가문에는 인물이 없습니다."
"뭐, 인물이 없다고?"
"그렇습니다. 이 가문에는 이즈의 니라야마에 계신 우지노라 님, 무사시 이와츠키의 우지후사 님 같은 분이 계신데도 어째서 지난해 사월 천황께서 쥬라쿠 저택에 납실 때 성주님께 상경을 권하지 않았는지, 이 가문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입에 올리는 말…… 상경하시지 않고 군비에 몰두한다는 소문이 나면 도리어 나라의 질서를 문란케 하는 자라 하여 역적으로 몰립니다. 역적이란 이름을 들으며 싸운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 군사력의 강약만을 문제삼고 민심의 귀추를 간과하시면 안 됩니다."
"우지나오! 이 사나이와의 문답은 더 필요치 않다. 이자는 우리 마음에 공포감을 불어넣으려는 적의 첩자야."
"허어, 큰 성주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십니까? 그렇게 보셨다면 도리가 없습니다. 제가 입을 다물겠습니다."
"끌어내라! 겐자부로, 데려가서 목을 쳐라!"
"예."
쿠노 겐자부로가 칼을 들고 정원으로 내려갔다.
"하하하……"
즈이후가 웃었다.
"무엇이 우스우냐? 남길 말이라도 있느냐?"
"할말은 아무것도 없소. 미친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이오. 어서 죽이시오."
겐자부로가 칼을 높이 쳐들었다.
"잠깐! 잠깐 기다려, 겐자부로! 내가 처치하겠다. 이곳을 피로 물들이면 불길해. 마장으로 끌고가라. 그리고 겐자부로는 아버님 곁에 있거라."
즈이후를 마장으로 끌고 온 아시가루에게 우지나오가 말했다.
"포승을 풀어라. 묶어놓은 채로는 볼품이 없다."
"하하하…… 어떻습니까,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역시 작은 성주님은 이 즈이후를 죽일 수 없을 것이오."
"그럼, 내가 그대를 구해줄 줄 알았다는 말인가?"
"나는 수도하는 승려요. 한없이 독설을 퍼붓고는 있으나, 상대에게 살기가 없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지요. 만약 작은 성주님께 정말 나를 죽이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면 이 수도승은 크게 패한 것이 됩니다. 이쪽에 해칠 마음이 없다면 상대도 살기를 느끼지 않는 법. 상대에게 살기를 느끼게 한다면 소승의 수도는 헛된 것이 됩니다."
"……?"
"옛날에는 말입니다. 우지나오 님. 나도 싸움꾼 즈이후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지요. 즈이후가 가는 곳이면 반드시 싸움 아니면 피비린내가 따라다녔으니까요. 살기는 살기를 부르게 마련. 그 무렵의 즈이후에게는 길거리의 건달들까지도 일부러 싸움을 걸어왓지요. 내가 찾아가는 절이나 다이묘의 저택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질 고약한 승병이나 무사들이 모두 나에게 시비를 걸어와요. 그래서 깨달았지요. 그 뒤 즈이후는 새로 수도를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
"이쪽이 투쟁심이 있으면 상대의 투쟁심도 불이 붙게 마련입니다. 이쪽이 성을 내고 있으면 상대가 냉정해지려고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상대를 끌어안지 않으면 안 된다. 끌어안고 뺨을 비비면서 진실을 이야기하면 상대도 해칠 마음을 버리게 된다…… 이렇게 깨달은 지가 벌써 십오 년, 겨우 화는 내지 않고 독설만 퍼부을 수 있게 되었지요."
우지나오가 아시가루에게 걸상을 가져오게 한다.
"즈이후 님, 여기 걸상에 앉으시오."
"이거 황송합니다. 독설을 퍼부었는데도 진노하지 않고 관용을 베푸시다니 감사합니다."
"스님은 아까 이곳에 오신 것을 도쿠가와 님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고 하셨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칸파쿠와도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뭐, 칸파쿠와도……?"
"예. 작은 성주님도 아버님도 칸파쿠가 호죠 가문을 적대시하는 줄 착각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도쿠가와 님은 물론 칸파쿠도 호죠 가문을 전혀 증오하지 않아요."
"으음."
"세상에는 피해망상이라는 벌레가 살고 있지요. 이 벌레에 물리면 남이 모두 적으로 보입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중한 충신을 의심하거나 훌륭한 아내를 쫓아버리거나 합니다. 이것이 한 나라와 한 가문으로 파고들면 멸망의 벌레로 변합니다. 모두를 가상의 적으로 여기고 행동하므로 어느 틈에 주위가 전부 정말 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현재 호죠 가문에 그런 현상이 없지 않은 듯합니다. 마음을 지난날의 역사에 비추어 생각해보십시오. 망하는 자는 거의 모두 이 망상이란 벌레 때문에 스스로 움직이다 멸망하게 되지요. 조용히 守勢를 취하다 망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야마오카 소하치의[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