媛惠 公主의 변신
네 살 때까지도 낯가림이 심하여 타인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엄마 아빠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보면 도망가기가 일수였는데……
어린이집에 2년여를 다니면서부터는 낯가림이 거의 없어보인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는 친구로 생각해서인 지 편의에 따라 어떤 부탁이든지 서슴없이 요청한다.
"할아버지, 나 ○쌀거야."
할아버지에게 미리 알리고 화장실에서 용무를 마친 뒤에는
"할아버지, 물로 닦아주세요."
아무 부끄러움도 타지 않고 부탁한다. 아니 어쩌면 명령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할아버지, 나 잠 와. 어부바해줘요."
"할아버지, 놀이터에 가서 그네타고 싶어요."
"나 춤출거야. 할아버지는 박수쳐야 돼. 알았지?"
그 때마다 할아버지가 맞장구를 쳐준다.
"원혜가 춤추면 할아버지도 신나거든. 노래부르면서 춤추면 더 좋은데."
"그러면, 나, 노래부르면서 춤출거야."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들을 끝도없이 부르며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춘다. 마치 발레리나 처럼.
"할머니 배고파. 밥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배고프면 아무 때나 밥타령이다.
"나. 식혜 먹고싶어."
"조리퐁 먹을래."
"우유 먹고싶은데."
"할머니, 가래떡 먹고싶어."
원혜가 식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잘먹는 음식은 단연 물김치다. 이 메뉴는 여름에서부터 가을, 겨울, 봄 어느 계절에서도 싫어하는 기색이 없다. 특히 시어서 오빠 언니들은 못먹는데도.
설날에는 오빠와 언니들이 부끄럼을 타고 못하는 재롱들을 원혜 혼자서 독무대를 장식하기도 하여 많은 상금을 타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할머니, 오늘은 병원에 다녀오라고 엄마가 말했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원혜가 할머니에게 하는 말이다.
"원혜가 어디 아픈데?"
"나 아픈데 없어."
"아픈데도 없는데 엄마가 병원에 가라고 했단 말이니?"
"응, 할머니하고 같이 병원에 가라고 했어."
"그러면 병원에 가볼까?"
"싫어, 나 병원에 가기싫어. 안갈거야. 할머니가 엄마한테 병원에 갔다고 말해줘."
"원, 녀석두 앙증맞게 음모를 꾸미네."
"그러렴. 근데 원혜가 안 아파야지. 아프면 병원에 가야 돼."
"나 안 아파~~~ 언제나 아프지 않거든."
식탁에서다.
두 오빠와 언니 넷이서 함께 식사를 한다.
할머니가 원혜 몫으로 특별 요리를 따로 그릇에 담아준다.
식사하면서 헐망을 부리며 밥 먹는 손주들에게 말한다.
"누가 오늘은 1등을 하고 누가 꼴등을 하게 될까?"
할아버지가 묻자마자 원혜가 손을 들고 말한다.
"내가 1등 하지롱."
그러자 서윤이 오빠가 말한다.
"원혜가 꼴등할거야."
원혜가 울음보를 터뜨리고 만다.
"나 꼴등은 싫단 말이야."
"원헤야, 꼴등이 싫으면 1등을 해버리면 되지."
할아버지가 옆에서 거든다.
원혜의 수저와 젓가락이 춤추듯이 빨라진다.
밥 한 번, 반찬 한 번 떠 먹고 물을 마시며…….
"할아버지, 물 좀 더 줘."
할아버지가 물을 컵에 부어준다.
어느새 원혜의 밥그릇이 비워지고 만다.
"할아버지, 내가 1등했다."
빈 밥그릇을 할아버지에게 내보이며 자랑한다.
"오우, 우리 원혜 공주님이 1등이다."
박수를 쳐준다.
원혜가 다시 수저를 들고 특별요리를 먹는다.
두 오빠와 언니가 핀잔을 준다.
"원혜 아직 다 먹지 않았잖아. 그러면 1등이 아니지."
"밥은 다 먹었거든. 이것은 밥이 아니야. 그래서 내가 1등이야."
"그래 맞다. 우리 원혜가 1등이야."
원혜가 특식까지 다 먹고나서 식탁 주위를 돌며 특유의 방방춤을 추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