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
일상에서 탈피해 보는 배낭여행을 꿈꾸어 온 지 얼마였던고,
마침 그 기회가 우리 부부에게 주어졌다.
달랑 배낭 하나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진정한 여행은 아무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대로 가는 거라네."
일단은 집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는 길을 택하여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암사에서 천호로, 천호에서 군자로, 군자에서 상봉으로, 상봉에서 춘천으로.
춘천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어디로 모실까요?"
"여기에서 온천장에 가까운 이름 난 맛집으로 안내 좀 부탁할까요?"
"예, 그러면 우선 온천장 가는 길을 알려드리고 맛집으로 가겠습니다."
소양강처녀상을 지나고 다시 뒷골목길을 한 참이나 달리다가 다리를 건너 보니
이정표에 소양강댐 화살표가 가리킨대로 주행한다.
"아직 멀었어요?"
"아닙니다. 이 곳에서 식사를 하시고 나면 온천장까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택시미터기에 어느듯 10,000원이 넘게 표시되어 나온다.
택시기사가 말한다.
"택시미터기에 나와 있는 숫자는 무시하고 10,000원만 주시면 됩니다. 온천장 길을 알려드리기 위해서
일부러 우회하여 오는 길이라 요금이 많이 나왔습니다."
기사가 안내한 식당 이름이 '쌈쌈맷방석숯불닭갈비'였다.
숯불에 맷방석돌(조약돌 크리)을 올려놓고 그 위에 고기를 굽는 방식이었다.
맛있었다. 막국수와 소면된장국을 곁들이니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았다.
소양강을 가로 건너지르는 유명한 콧구녕다리를 도보로 건너서
버스를 타고 소양감댐 정상까지 올라가서 소양강댐의 이모저모를 구경하였다.
어둠 속에서도 많은 관광객들이 올라와 있었다.
낮에 왔었드라면 유람선도 타볼 수 있었을 터였는데 아쉬었다.
기념탑과 소양강처녀상, 학 동상 등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바닥에서 불이 밝혀짐과 동시에 노래소리가 들려와 주위를 살펴보니
육영수여사님이 잉어 10,000여 마리를 여기 소양강댐에 방류하여 지금까지 자라고 있다는
사연이 돌비에 씌여 있었다.
늦기 전에 버스를 타고 남춘천에 도착하였다.
11번, 12번, 150번의 3개 로선의 버스들이 소양강댐정상까지 운행하고 있었다.
롯데노래방에 들러 비록 음치이지만 부부가
함께 불러보는 노래의 회포와 흥취는 또 다른 감칠맛이 돋아나기도 했다.
샤워겸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들 잠을 잘 자는데도 난 잠이 오지 않았다.
아마도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에 적응이 잘 되지 않은 탓이었으리.
샤우나에서 5시간 동안 피로를 푸는 안마와 명상의 시간을 가져봤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해로 향하였다.
창가에 내비친 동해 물결이 참으로 맑았다.
'일출은 동해에서' 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동해의 특미인 오징어덮밥을 먹어봤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동해시에서 구경해 볼만한 곳이 어딥니까?"
주인장에게 물어보는데, 곁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기사분이 선뜻 나선다.
"우선 천곡동굴에 가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식당 주인이 안내하는 대로 택시를 타고 천곡동굴을 향했다.
천곡동굴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내부 공사로 인하여 관광을 할 수 없다고 하니 도리 없이 되돌아가는 수밖에.
"치~ 가던 날이 장날이라더니..."
"정선으로 가는 버스 있습니까?"
"정선으로 가시려면 태백으로 가셔서 거기서 정선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시면 됩니다."
"태백으로 가서 정선가는 버스를 탑시다."
길을 잘 알 수 없어서 우리와 같은 등산복 입은 행인에게 태백가는 교통편을 물었더니
"동해역에서 열차를 타면 됩니다."
"아니 태백으로 가는 열차가 있단 말입니까?
"그럼요, 열차는 자주 있습니다."
(이런이라니, 내가 왜 여태껒 열차편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택시를 타고 동해시로 향했다.
동해역에 도착하여 정선으로 가는 열차를 알아봤으나 정선으로 가는 열차는 없고
태백선으로 강릉에서 청량리까지 왕래하는 무궁화호가 전부였다.
(태백에서 정선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정선을 구경하면 또 하룻밤을 정선에서 보내야 된다.
차라리 정선은 다음 기회에 구경하기로 하고 바로 정동진으로 가서 해돋이를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정동진까지 열차가 갑니까?"
"그럼요, 정동진에 가시려고요?"
아내와 상의한다. 어떨까? 엊저녁에 큰아들에게서 문자가 들어와 있었는데,
도헌(나의 장손)이 생일(9월 21일)에 서울 식구들끼리 한자리에서 식사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오늘이 19일이니까 정동진에 가서 내일 아침 '해돋이'를 보고 바로 올라갑시다."
"그렇게 하지요."
그래서 정동진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이 열차가 부산의 부전역에서 강릉까지 가는 열차였다.
(아니, 고향에서 올라오는 열차를 보니 감회가 사뭇 남달랐다. 그런데 강릉까지밖에 안 간다니...)
차장이 오기에 물어봤다.
"저기요, 차장님, 이 차가 정동진까지 가는 것 맞습니까?"
"그럼요, 강릉역 직전이 바로 정동진역입니다."
"뭐라구요, 강릉까지 가서 갈아타는 게 아니었습니까?"
"네, 정동진을 먼저 가고 강릉이 종착역입니다."
(아~~ 그렇구나, 난 여태 버스로선만 생각하고 있었다니, 착각을 해도 유분수지. 너무 심했구먼)
정동진역에 도착하여 보니 플랫폼에서부터 모래사장위에 많은 사람들이 주위의 배경에 맞추어
사진촬영에 분주하였다.
우리도 그 유혹에 견디지 못하고 카메라를 꺼내 조각동상들을 배경으로 여러 컷 찍었다.
대합실을 나와 찜질방을 찾아 두리번 거려 봤으나 찜질방은 커녕 샤우나시설조차 없는 듯하였다.
그때다. 점잖아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곁으로 다가와서
"좋은 숙소가 있습니다. 구경해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이용하셔도 됩니다."
"어딘데요? 민박입니까?"
"아닙니다. 모텔입니다. 하루 저녁 이용료가 40,000원인데, 온돌방을 특별히 30,000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캐슬모텔이었다. 숙소로 정하고 여장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여러 테마 시설을 두루 구경하고 열차칸 안에 설치 된 정동진 박물관은 야간 관람시간이 마감되어 볼 수 없었다.
산위에 자리잡은 '선크루즈'를 구경하기로 하였다.
"선크루즈로 올라가려면 어디로 가야 됩니까?"
"저기 우측으로 돌아 올라가시면 됩니다."
얼마 되지 않을 것같은 거리로 여기고 둘이서 손에 손을 맞잡고 걸어 올라갔다.
산을 깎아내고 길을 뚫어 도로를 만들고 그 위에 선크루즈를 건설하였구나.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네요."
"그렇구먼 이것도 좋은 추억감이 되지 않겠어?"
선크루즈에 도착하고 보니 버스가 올라오고 있었다.
- 이야 우리가 조금 기다렸드라면 버스를 타고 올 수도 있었겠네 -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었다. 1인당 5,000원이었다.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내려다 보니 아름다운 바다와 멋진 풍광들이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양 손 모양이 하얗게 조각되어 있는 상은 축복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선크루즈 실내 레스토랑에서 방문 기념으로 돌솥비빔밥을 주문하여 먹어본다.
시중에서의 3배인 18,000원이었다.
맛이 있었다. 과연 비싼만큼 미식이었다. 품격이 돋보이기도 했다.
5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돋아오는 햇님을 맞이하기 위해 백사장으로 향했다.
벌써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모래사장에 운집하여 있었다.
제각기 카메라와 물병들을 가지고 있었다. 더러는 모포로 온 몸을 감싸고 나온 할머니들도 있었다.
6시 10분이다. 빨간 조명이 저 멀리 수평선에서 어우러져 하늘로 번져오르고 있었다.
빨간 알맹이가 귀엽게 막 태어나온 태아인양 서서히 몸체를 이루어 형상을 이루고 있는 듯했다.
"우와! 정말로 멋있다!!"
이구동성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탄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구름도 안개도 태양의 위용을 막을 수 없었다.
다만 구름과 안개가 없었드라면 동편 하늘에 온통 빨간 햇살로 인하여 아름답게 수 놓아질 수 있었을 터였는데...
그런 장관을 머리에 그리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게 어딘가!
정동진, 정동진, 정동진 꿈속에서도 몇 번씩이나 찾아봤던 해돋이를 이제서야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게 ‥‥‥
청량리로 향하는 귀가길에 올라 5시간여 동안 무궁화호 열차 안에서 차창너머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겨보는 것도 열차여행의 묘미이리라. 특히 열차여행은 완행열차를 이용하라는 여행선각자(?)들의
경구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