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憲이는 개그맨
밥상을 맞이하여 빙 둘러 앉은 자리다.
나(道憲)를 중심으로 오른 쪽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앉고,
왼 쪽에는 抒潤, 恩祉가 앉아 있는 원탁이다.
따지고 보면 나의 맞은 편에는 은지와 할머니가 앉아 있는 모양새다.
난, 원래 웃기는 기질이 조금 있는 편이다.
가끔 할아버지로부터
"도헌아, 넌 커서 개그맨이 되어도 성공하겠다." 라는 평을 듣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다 나의 유일한 관객인 사촌 동생인 서윤이는 내가 말을 할 때마다 신나게
특유의 폭소를 터뜨리는 바람에 나는 더 신이 나서 떠들어대게 된다.
어쩌면 오늘밤의 식탁에서도 그런 나와 서윤이의 일상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나의 개그가 피치를 한참 올리고 있었지 아마도...
그런데 할머니가 갑자기 식탁에 수저를 '탁' 놓으시며
"그만 떠들고 밥 못 먹겄나?" 하신게 아닌가?
그래서 난 더 웃기려고 할머니의 흉내를 따라했다.
"그만 떠들고 밥 못먹겄나?"라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윤이가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만다. 거기에다
은지까지 입에 밥을 넣어둔채로 웃다가 밥풀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대 성공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아예 식사를 안하시고 나를 노려보고 계신다.
"도헌아, 이제 그만 웃기고 밥이나 먹자." 할아버지까지 거들고 나오신다.
하지만 나는 이제 할아버지의 흉내까지 내었다.
표정까지 할아버지의 근엄한대로 따라했더니 서윤이와 은지가 드디어 웃음보를
활짝 터떠리고 말았다. 주체할 길 없다는 듯이...
그런데 문제는 나의 이런 버릇이 하루 이틀만 생긴 것이 아니라, 매 식사시간 때마다
어김없이 진행된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참다참다 못 참고 할머니가 역성을 내신 것이리.
할머니는 여전히 수저를 놓으시고 나를 주시하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를 더 웃기기 위해 일어나서 '말춤'을 추어대기 시작하였다.
서윤이와 은지는 덩달아 어깨를 들썩거리며 나와 흥을 함께하였다.
그때다. 할아버지의 고성이 터져나온 것이.
"그만 못해! 도헌아, 할머니가 밥 안 잡숫고 계신 것이 좋으냐?"
그제서야 동생들은 사태를 심각하게 느끼고 눈을 내리 깔며 밥을 하늘 만큼 떠서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속으로 킥킥하면서‥‥‥.
그만 할아버지도 참지 못하고
"으왓하하하하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었다.
"웃음이 나와요? 지금. 으이구!" 할아버지에게 핀잔을 주시는 할머니도 얼굴을 돌린채
"어허허허허허" 웃고 계셨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너희들 웃음이 나오려 하면 밥 먹지 말고 벌 떡 일어나서 저기 거울 앞에 가서
큰소리로 한바탕 신나게 웃고 오너라. 눈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나, 서윤이, 은지 모두 일어나 보무도 당당하게 거울 앞에 섰다.
"하하하하하하!" 큰 소리로 한바탕 웃어봤다.
"크아하하하하하." 서윤이도,
"호호호호호호호호." 은지도.
우리는 얼마간 웃고 나서 밥상머리에 돌아와 앉았다.
막상 밥을 먹으려니 서윤이가 또 다시 나의 눈치를 보며 웃기 시작하였다.
은지도 따라서 웃기 시작하였다.
"웃지마! 밥 먹어!" 나의 큰 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서윤이와 은지는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너희들 나 따라와."나는 은지와 서윤이를 데리고 거울 앞에 다시 섰다.
"하하하하하하! 자! 웃어 봐!"
하지만 은지와 서윤이는 웃지를 않았다.
그새 할머니는 식탁에서 자리를 떠나고 안 계셨다.
"도헌아, 어서 밥 먹어라. 너희들이 밥을 다 먹어야 할머니는 식사 하실꺼야."
조용히 타이르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